종아리나 허벅지에 푸른 핏줄이 비치거나 심한 경우 지렁이처럼 그 부위가 울퉁불퉁 튀어나온다면 그건 하지정맥류라는 진행성 혈관질환일 수 있습니다. 하지정맥류의 경우는 자연적으로 치유되지 않고 시간이 지날수록 악화되어 심각한 합병증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오늘은 하지정맥류의 원인과 치료법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하지정맥류란?
중력을 거스르는 정맥 판막(Valve)의 붕괴
다리에서 심장으로 올라가는 정맥혈은 지구의 중력을 정면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험난한 여정을 거칩니다. 이때 피가 거꾸로 쏟아져 내리지 않도록 막아주는 핵심 안전장치가 바로 혈관 내부에 존재하는 '판막(Valve)'입니다. 어떠한 원인으로 인해 이 판막이 망가지거나 느슨해지면, 혈액이 심장으로 올라가지 못하고 중력에 의해 다리 쪽으로 역류하게 됩니다. 역류한 피가 종아리 부근에 고이면서 혈관 압력이 급속도로 높아지고, 얇은 정맥 혈관 벽이 풍선처럼 부풀어 올라 피부 밖으로 돌출되는 현상이 바로 하지정맥류입니다.
하지정맥류를 유발하는 원인 5가지
하지정맥류는 단순히 오래 서 있어서 생기는 병이 아닙니다. 유전과 환경, 호르몬이 복합적으로 얽혀 혈관의 내구성을 무너뜨린 결과입니다.
1. 강력한 유전적 소인 (가족력)
하지정맥류 발병의 가장 강력하고 압도적인 원인은 바로 '유전'입니다. 선천적으로 정맥 혈관 벽이나 판막이 약하게 태어난 경우, 일반인과 똑같은 생활을 해도 훨씬 쉽게 혈관이 늘어납니다. 부모 중 한 명이라도 하지정맥류가 있다면 자녀의 발병 확률은 40~50%에 달하며, 양부모 모두 질환을 앓았다면 확률은 90% 가까이 치솟습니다.
2. 노화에 따른 혈관 탄력 저하
나이가 들면 피부가 처지듯 혈관도 늙습니다. 정맥 혈관 벽을 구성하는 콜라겐과 엘라스틴 섬유가 감소하면서 탄력을 잃고 얇아집니다. 판막 또한 서서히 마모되어 제 기능을 잃기 때문에, 50대 이상의 중장년층에서 유병률이 급격하게 증가합니다.
3. 장시간 같은 자세를 유지하는 직업적 환경
다리의 정맥혈이 위로 펌프질 되려면 종아리 근육이 수축하고 이완하는 운동이 필수적입니다(종아리 펌프 작용). 하지만 교사, 미용사, 승무원처럼 하루 종일 서서 일하거나, 사무직처럼 의자에 꼼짝 않고 장시간 앉아있는 직업군은 종아리 근육의 펌프 작용이 일어나지 않아 혈액이 다리에 극심하게 정체됩니다.
4. 여성 호르몬의 변화 (임신과 갱년기)
하지정맥류가 남성보다 여성에게서 2~3배 이상 흔하게 발생하는 이유는 호르몬 때문입니다. 임신 중 분비되는 릴렉신(Relaxin) 호르몬이나 에스트로겐은 골반을 이완시킬 뿐만 아니라 정맥 혈관 벽까지 함께 느슨하게 만듭니다. 또한 임신 후기에는 태아가 커지면서 골반 내 정맥을 물리적으로 압박하여 다리 혈류의 흐름을 차단합니다. 갱년기 호르몬 변화 역시 혈관의 탄력 저하를 가속화합니다.
5. 비만, 변비, 그리고 꽉 끼는 옷
복부 비만이 심하거나 만성 변비로 화장실에서 배에 과도하게 힘을 주는 습관은 복강 내 압력을 급격히 상승시킵니다. 복압이 높아지면 다리에서 올라오는 피가 심장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정체됩니다. 또한, 보정 속옷, 스키니 진, 레깅스 등 다리를 꽉 조이는 옷은 표재 정맥의 흐름을 직접적으로 방해하여 정맥류를 악화시키는 최악의 패션 습관입니다.
하지정맥류의 초기 증상
핏줄이 튀어나와야만 병원을 찾는 분들이 많지만, 혈관이 돌출되는 것은 병이 한참 진행된 후의 일입니다. 보이지 않는 '잠복성 하지정맥류'의 신호를 포착해야 합니다.
- 극심한 부종과 중압감: 아침에는 괜찮다가 오후나 저녁이 될수록 종아리가 터질 듯이 붓고 모래주머니를 찬 것처럼 무겁습니다.
- 원인 모를 통증과 쥐(경련): 수면 중 갑자기 종아리에 쥐가 나서 깨는 일이 잦거나, 다리 깊은 곳에서 뻐근하고 쑤시는 듯한 통증이 발생합니다.
- 다리의 열감과 가려움증: 혈액이 갇혀 정체되면서 다리에 미세한 염증 반응이 일어나 피부가 가렵거나 화끈거리는 열감이 느껴집니다.
- 거미줄 모양의 모세혈관 발달: 피부 표면에 붉거나 푸른 실핏줄이 거미줄처럼 번져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증상이 지속된다면 지체 없이 흉부외과나 혈관외과 전문의를 찾아 혈관 초음파 검사(Duplex Ultrasound)를 통해 정확한 역류 부위와 정도를 진단받아야 합니다.
하지정맥류의 단계별 치료법
하지정맥류 치료의 대원칙은 고장 나서 피가 거꾸로 새는 '원인 혈관'을 완벽하게 폐쇄하거나 제거하여, 깨끗한 피가 정상적인 다른 혈관으로 우회하여 흐르도록 길을 터주는 것입니다. 역류 정도와 증상의 심각성에 따라 맞춤형 치료가 적용됩니다.
1. 초기 관리: 보존적 요법 (비수술적 치료)
초음파 검사상 역류가 심하지 않거나, 수술이 당장 어려운 임산부 등의 경우 일상생활의 관리를 통해 증상 악화를 막습니다.
- 의료용 압박스타킹 착용: 가장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처방입니다. 발목부터 종아리, 허벅지로 올라갈수록 압력이 약해지도록 설계된 특수 스타킹이 다리 근육을 꽉 조여주어 혈액이 고이지 않고 위로 펌프질 되도록 돕습니다.
- 정맥 순환 개선제 복용: 혈관 벽의 긴장도를 높이고 미세 염증을 가라앉혀 부종과 통증을 완화하는 약물(디오스민 성분 등)을 복용합니다. (단, 근본적인 역류를 고칠 수는 없습니다.)
2. 모세혈관 확장증 치료: 혈관 경화 요법 (주사 치료)
지름 3mm 이하의 가느다란 실핏줄이나 거미줄 정맥류에 주로 적용되는 간단한 주사 시술입니다. 늘어난 혈관 내부에 '경화제'라는 약물을 직접 주사하여 혈관을 섬유화(단단하게 굳힘)시킴으로써 서서히 몸속으로 흡수되어 사라지게 만듭니다. 흉터가 남지 않고 바로 일상생활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3. 뿌리 혈관의 확실한 차단: 수술적 치료 (열과 비열 치료)
초음파상 판막의 역류가 0.5초 이상 관찰되는 명백한 질환 상태라면, 반드시 원인 혈관인 대복재정맥이나 소복재정맥을 폐쇄하는 수술이 필요합니다. 과거의 피부를 크게 째고 혈관을 뽑아내는 '발거술'은 최근 거의 시행되지 않으며, 바늘구멍만 한 상처로 진행되는 '최소 침습 시술'이 표준 치료로 자리 잡았습니다.
- [열(Thermal)을 이용한 치료법] 레이저 및 고주파 절제술: 가장 널리 쓰이고 데이터가 축적된 확실한 방법입니다. 초음파를 보며 고장 난 혈관 안으로 얇은 광섬유 카테터를 삽입한 뒤, 약 120도(레이저) 전후의 열을 가하여 혈관 벽을 태워 쪼그라뜨려 폐쇄합니다. 전신마취 없이 국소/수면마취로 진행되며 수술 후 회복이 빠릅니다.
- [비열(Non-thermal) 치료법] 베나실(VenaSeal)과 클라리베인(ClariVein): 열로 인한 주변 신경 손상 위험을 원천 차단한 가장 진보된 최신 치료법입니다. 베나실은 인체에 무해한 특수 의료용 접착제(시아노아크릴레이트)를 혈관 내부에 주입하여 고장 난 혈관을 순간적으로 강력하게 붙여버립니다. 수술 후 압박스타킹을 신을 필요가 없고 통증이 거의 없다는 것이 최대 장점입니다. 클라리베인은 빠르게 회전하는 특수 카테터가 혈관 내벽을 물리적으로 긁어내면서 동시에 액체 경화제를 분사하여 혈관을 폐쇄하는 방식입니다.
하지정맥류는 감기처럼 시간이 지난다고 저절로 낫는 병이 절대 아닙니다. 방치할 경우 혈류가 완전히 막혀 피부가 검게 썩어 들어가는 궤양이나, 혈관 속에 피떡이 생겨 심장이나 폐로 날아가는 치명적인 '심부정맥 혈전증'으로 발전할 수 있는 시한폭탄과도 같습니다.
다리가 보내는 붓고 저린 구조 신호를 가벼운 피로로 넘기지 마십시오. 평소 까치발 들기나 수영 등 종아리 근육을 강화하는 운동을 생활화하고, 꽉 끼는 옷을 피하는 예방적 라이프스타일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증상이 나타난다면, 풍부한 임상 경험을 가진 혈관 전문의의 정확한 초음파 진단과 최신 최소 침습 치료를 통해 매끈하고 가벼운 당신의 소중한 다리를 되찾으시길 바랍니다.